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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 왕산허위선생 춘계향사 봉행[구미인터넷뉴스]구미시(시장 장세용)는 4월 2일 11:00 (사)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은호)주관으로 왕산허위선생기념관 내 경인사에서 왕산허위선생 탄신166주기 춘계향사를 봉행했다. 이번 춘계향사는 코로나19로 간소하게 진행되었으며,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 김재상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박은호 (사)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종헌관을 맡아 진행되었다. 왕산허위선생은(1855-1908) 구미 임은동 출생하여 청년기를 이 지역에서 보내며 유학과 경륜을 익혔다. 이후 국난으로 인한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 고종의 부름을 받고 대한제국 시기 평리원 수반판사와 재판장(오늘날 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비서실장) 등의 관직에 재직했다. 재직 중에도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거나 황국신문, 매일신보 등에 항일격문을 수차례 게재하는 등 폭넓은 구국활동을 펼쳤다. 1905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국 의병 거병에 동참했으며,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1908년 일본의 심장부인 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진두지휘 했다.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 형무소의 1호 사형수가 되어 순국하였고 1962년 대한민국은 왕산허위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이러한 왕산허위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서울특별시는 동대문구 신설동역 앞 도로를 1966년 11월 26일 '왕산로'로 지정했으며, 구미시에서는 2009년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을 건립하여 선생에 대한 추모와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향사에 초헌관을 맡은 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왕산허위선생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모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왕산선생과 왕산가(家)의 대를 이은 독립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왕산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위대한 형제들 왕산 허위 선생의 큰형(허훈 선생)은 진보에서 일으킨 의병의 창의장이었고, 셋째 형(허겸 선생)은 왕산 선생의 김산(김천) 의병과 방산 선생의 의병 때 참여한 것을 비롯해, 신민회 회원으로 신흥무관학교 전신 신흥학교 설립, 군자금 모집 등 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왕산 선생의 순국 이후 일가는 일제의 감시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허겸 선생은 유족과 사촌 형제인 허형, 허필 선생 등의 일가를 데리고 만주(서간도)로 이주했다. ▷왕산일가 독립운동 대를 이어가다. 왕산선생의 장남(허학 선생)은 21세에 경기도 연천에서 왕산선생이 일으킨 의병에 참여했다. 1913년 독립의군부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다. 둘째 아들(허영 선생)은 연해주 등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고, 셋째 아들(허준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총무와 경리부장을 맡았다. 허준 선생은 한때 김좌진 장군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청산리전투에서 활약했다. 넷째 아들 (허국 선생)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수학했다. ▷왕산일가의 삶은 험난하고 처절했다. 일본군은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하자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켜 우리 독립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과 무참한 학살을 일으켰고 왕산 일가도 일본군이 들이닥치는 상황에서 서간도를 떠나 북간도로 피신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자 허학 선생과 허국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로, 1937년에는 소련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하여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 이렇듯 왕산 일가는 독립운동으로 목숨을 위협받아, 여러 나라로 흩어져 처절한 삶을 이어갔다. 2009년 구미시 임은동에 세워진 『왕산 허위 선생기념관』 개관식에서 이들 일족은 생전 처음 사촌 형제 등을 만났으며, 100년 만의 만남이었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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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제23회 경북역사인물학술발표회 개최[구미인터넷뉴스]구미시에서는 10월 30일(금) 새마을운동테마공원 글로벌관 다목적홀에서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회장 정연화)가 주최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문화원, 선산김씨대종회가 후원하는 '제23회 경북역사인물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정연화 회장과 관내 문화원장, 장세용 구미시장, 김세환 구미부시장, 윤창욱 도의원, 신문식 시의원, 라태훈 구미문화원장, 김광우 선산김씨대종회 회장, 박은호 (사)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개회사에서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정연화 회장은 "경상북도는 퇴계 학맥의 정통을 계승한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국난극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독립운동의 발상지이다"며 "경북지역의 훌륭한 선현들의 뜻을 후세에 전하여 경북의 문화인물의 재조명과 발전에 보탬이 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말·일제하 선산사람들의 독립운동과 해산(海山) 김정묵 일가의 활동'을 주제로 하여 ▲ 중국 군벌과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교류와 연계활동(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원) ▲ 선산인 민산 김교삼의 생애와 민족운동 고찰(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방산 허훈의 학문과 진보의진(권영배 전 계명대학교 겸임교수) ▲ 왕산 허위 일가의 해외 망명과 독립운동(권대웅 전 대경대학교 교수)에 대한 발표와 질의ㆍ응답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학술발표회에서는 해산 김정묵 선생과 그 일가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고 시대정신을 본받아 실천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김광우 선산김씨대종회 회장이 지역독립운동가와 김정묵 선생과 일가에 대한 재평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광우 회장은 축사에서 "구미는 조선시대 이래 조선 인재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고, 경상도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 있다 할 정도로 인재의 부고이다. 구미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는 허훈.허위 형제를 비롯한 김해허씨의 수많은 지사와 김정묵.김교삼, 장진홍 의사 등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구미 전체의 독립운동을 밝히는 연구가 진척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해산 김정묵 선생은(1888년~1944년) 구미 도량동 출생으로 백범 김구,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와 함께 의열단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1963년 대통령 표창과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동생(김성묵, 김사묵)과 아들(김교일, 김교삼, 김대륙)들이 그의 유지를 이어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 김세환 부시장은 "해산 김정묵 선생과 그 일가의 독립운동처럼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한 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연구가 계속 되길 바라며, 선조들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가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도록 더욱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 중에 참석한 장세용 구미시장은 학술대회 주제 발표에 나선 교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구미시에서도 독립운동가 등에 대한 재조명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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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2주기 추모제.추모식 개최[구미인터넷뉴스]왕산 허위선생 순국 112주기를 맞아 10월 21일 11시에 (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왕산허위선생기념관 내 경인사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했으며, 광복회 구미.김천연합회/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왕산 허위 선생 묘소와 왕산기념관에서 추모식과 강연회를 개최했다. 추모제(향사)는 이날 11시에 코로나19로 간소하게 진행되었으며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 김재상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박은호 (사)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이 종헌관으로 참여했고, 왕산선생의 유족, 시ㆍ도의원 등 3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추모제(향사)에 초헌관을 맡은 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왕산 허위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을 실천하신, 왕산선생뿐만 아니라 왕산가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고 하였다. 이날 오후 1시에는 왕산 허위 선생 묘소에서 광복회 구미김천연합지회(지회장 임봉준)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지회장 이수연) 주최로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2주년 추모식을 개최했다. 추모식은 왕산의 장손자 허경성옹과 증손자 허윤씨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선생, 이동일 광복회 경북지부장,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등 광복회 회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정부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왕산 허위 선생의 약력 보고,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독립군가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추모식에는 정세균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 김원웅 광복회장 등이 조화를 보내와 허위 선생을 추모했다. 왕산 허위선생(1855~1908)은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하였다. 유학자이자 대한제국 시기 평리원 수반판사, 재판장(오늘날 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비서실장) 등의 관직에 재직하였다. 선생은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통분하여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국 의병장과 연합한 13도 창의군을 결성, 의병총대장으로 서울로 진격하였으나 실패,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제1호 사형수로 순국하였다. 서울시는 이를 기려 서울의 동서를 관통하는 주요 도로를 '왕산로'라 명명하였으며, 1962년 대한민국은 왕산허위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제1호)을 추서했다. 왕산 선생의 일가 가계도에는 왕산허위선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배출하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왕산 허위선생 가문에서는 14인의 독립투사가 배출되었으며 왕산가 외손자 이육사 형제를 비롯해 왕산의 사위 이기영과 그 형제들 제자까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허위 선생은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린 의병전쟁의 포문을 연 항일 의병장으로 안중근 의사와 직계제자 대한광복회 박상진 의사에게 민족혼을 심어 준 분이다. 이번 추모식에는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광복회 회원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왕산 허위 장손자 허경성, 왕산허위 증손자 허윤, 이육사 외삼촌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 석주 이상룡 손자 이항증, 왕산 허위 사위 이기영의 손녀 이정재, 몽양 여운형 선생의 손자 여인성, 장진홍 독립투사 손자 장상규, 박희광 독립투사 아들 박정용, 광복회 이동일 경북지부장, 광복회 노수문 대구지부장등 광복회 회원들과 시도의원들 참석해 허위선생을 추모했다. 이날 추모식 후 2부 행사에서는 광복회(회장 김원웅)의 역사정의실천상 시상식이 있었다. 시상식에서 정치인상에 이삼걸(전, 민주당 안동지역위원장), 김준열(경북도의원 구미), 언론인상 김종성 기자(구미인터넷뉴스), 시민운동가상 이수연 지회장(민문연구미지회)이 수상했다. 이어서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의 정체성과 친일청산 과제'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김 회장은 강연회에서 '친일 청산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국회의원 시절 소파협정을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높이자고 했으나 빨갱이로 매도당했다"고 하면서 "태극기부대로부터 빨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다음에 대통령이 돼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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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백야 김교홍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이사장 별세▣ 알려드립니다 백야 김교홍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이사장께서 8월 2일 오전 9시 18분 향년 87세로 운명하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족장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영결식은 8월 4일 오전 10시 구미 왕산선생기념관에서 거행할 예정입니다. 망인의 뜻을 받들어 부의와 조화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상주 성우 건우 ▣ 故 백야 김교홍(사)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 약력 백야 김교홍 이사장께서는 1934년 6월 24일 구미 형곡동에서 아버지 김연묵과 어머니 최병해 사이에서 4남 1녀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선산이며 호는 백야입니다. 그리고 구미초등학교, 선산중학교, 대구농림고등학교 거쳐 1958년 2월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하셨으며, 1965년 2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를 수료하셨습니다. 가족으로는 강릉유씨 유정혜 여사와 결혼하여 성우. 건우. 안나 2남 1녀를 두었으며, 삭녕최씨 최명자 여사와 재혼하셨습니다. 주요경력으로는 1961 ~ 1972년까지 천주교 구미본당 총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성베네딕도 수도회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를 도와 카톨릭농민회, 신용조합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1982년 4월 ~ 1995년 12월까지 초대 ~5대 구미문화원장 1981년 3월 대한민국평화통일 정책자문위원 1985년 3월 구미시정 자문위원회 위원장 1995년 11월 한국전례원 구미지역원 원장 1996년 11월 ~ 현재까지 구미예절원 원장 2009년 7월 ~ 현재까지 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 2018년부터 안동 병산서원 원장을 비롯해 경상북도 도정자문위원, 성균관 유도회 상임위원, 선산김씨 문간공파 종친회장, 구미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등 다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이사장 저서로는 문화 우리예절, 유학의 고장 구미, 구미의 맥락 외 다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수상경력은 내무부장관상, 문화부장관상,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상, 자랑스러운 구미사람 대상, 삼일문화대상 외 다수를 수상하셨습니다. 이사장께서는 평생을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의 유림을 출입하면서 많은 유생들과 교우를 맺었으며 후학 육성과 학문에 진력하시는 한편,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시고 2020년 8월 2일 9시 18분 향년 87세를 일기로 서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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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왕산기념사업회, 왕산기념관 신임 사무국장 선임 논란!사단법인 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 김교홍)는 11. 22(금) 오전 11시 왕산기념관 이사장실에서 이사장 및 이사 등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이사회를 개최했다. 정기이사회에는 2019년 왕산기념관 사업 추진실적보고를 시작으로 올해를 마지막으로 임기를 마치는 왕산기념관 최기준 사무국장을 대신하여 차기 사무국장에 장웅재(전, 양포동장)을 선임 의결하고 기타 토의사항 순으로 진행했다. 김교홍 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이해 더욱 뜻깊은 한해를 보냈고 2020년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시민들에게 왕산 선생의 호국 정신을 더욱 잘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성칠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인사말에서 2009년 개관한 이래 10년 동안 왕산선생의 정신을 알리는 역할에 앞장 선 임원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구미시에서도 왕산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선임 결정된 왕산기념관 장웅재 사무국장은 양포동장으로 근무했으며, 금년 7. 1.부터 공로연수 중이다. 현직 공무원을 임기도 마치기 전에 사무국장으로 선임한 것에 대한 부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구미시 오흥석 문화재담당 계장은 "왕산기념사업회에서 사무국장 선임 등은 알아서 한 일이며, 관련해서 정식으로 통보가 오면 확인해 보겠다"고 하면서 "현 사무국장 임기는 12월 말일까지로 알고 있고, 선임에 문제가 있으면 그 때가서 처리하면 된다"는 등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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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 향사 봉행구미시는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를 맞아 10. 21(월) 오전 11시 (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했다. 추모제는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윤창욱 도의원이 종헌관으로 참여했고, 왕산선생의 손자 허경성 부부, 왕산가 후손 허벽 부부, 기관단체장 및 기념사업회 임원, 주민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특히 이번 향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근조화환을 보내와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추모의 의미를 더 했다. 왕산 허위선생은(1855. 4. 2. ~ 1908. 10. 21.) 구미 임은리 출신으로 평리원 재판장(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의 관직에 재직하였다. 선생은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강탈당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13도창의군을 창설하였고 의병총대장으로 1907년 일본의 심장부인 조전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대 300명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진두지휘 했다. 서울시는 이를 기리고자 왕산선생의 13도창의군 선발대가 조선통감부를 치기 위해 진군한 청량리에서 동대문간의 도로를 “왕산로”로 명명했다. 왕산선생은 1908년 일본헌병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 같은 해 (음) 9. 27.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하여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장 수훈자는 민간인으로서는 왕산 허위, 안중근 의사 등을 비롯한 28명 뿐이다. 왕산선생의 일가도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선생의 형제(허훈, 허겸)는 모두 의병장을 지냈고, 아들(허학, 허영, 허준, 허국) 및 4촌 형제 등 14명도 의병투쟁에 적극 나섰으며,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세력 후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서울), 석주 이상룡선생 가문(안동)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독립운동 가문으로 손꼽힌다. 안중근 의사는 "높은 벼슬아치들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를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왕산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선생의 의병활동과 나라사랑 정신은 안중근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이후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날 향사의 초헌관을 맡은 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왕산 허위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 3대가 헌신한 왕산가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고 했다. 이번 추모제는 순국111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실시했으며, 전날(20일)에도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주관으로 실시했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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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허위선생 위패봉안 및 낙성고유제 봉행구미시(시장 장세용)와 (사)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 김교홍)는 4. 2.(화) 왕산허위선생의 탄생기념일을 맞아 오전 9시 30분부터 기관단체장 및 기념사업회 임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왕산 허위선생의 사당인 경인사의 낙성고유제와 왕산허위선생 위패 봉안식을 가졌다. 왕산 허위선생은(1855. 4. 2~1908. 10. 21) 구미 임은리 출생으로 구한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나라를 빼앗자 오늘날의 대법원장, 고종의 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 높은 관직에 있어 독립운동에 뛰어 들지 않았으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과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분이다. 왕산선생은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1908년 일본의 심장부인 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진두지휘 했다. 서울시는 왕산선생의 13도 창의군 선발대가 통감부를 치기 위해 진군한 청량리에서 동대문간의 도로명을 '왕산로'로 명명하고 있다. 서울의 도로명은 우리나라의 유명 유학자, 장군, 성군, 독립투사 등 유명인의 호나 이름을 따서 사용하고 있다. 퇴계로(퇴계 이황), 을지로(을지문덕장군), 세종로(세종대왕), 충무로(충무공 이순신장군) 등이다. 서울 도로명에 왕산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왕산 허위선생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형제, 자손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3대 가문은 왕산 허위선생 가문(구미),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서울), 석주 이상룡선생 가문(안동)이 독립운동 3대 명문가에 당당이 이름을 올려 구미를 빛내고 있으나, 정작 이 사실을 구미 시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한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했다. 대한민국장은 건국훈장 5등급 중 1등급 훈장으로 금년도 기준 1만5천명 서훈자 중 민간인 수훈자는 왕산허위, 안중근 의사 등을 비롯한 28명뿐이다. 왕산허위선생의 구국정신은 중·후기 독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선생의 제자인 고헌 박상진(울산 박상진기념관)은 후에 광복단과 의열단을 조직하여 단원으로 하여금 일본군의 앞잡이인 매국노를 처단하고 조선의 침탈에 가세한 일본의 주요 건물들을 폭파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의 용맹한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높은 벼슬아치들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를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왕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고 했을 정도로 선생의 순국 후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왕산기념관에서는 선생의 위패봉안은 누각이 완공되고 나서 할 예정 이였으나, 예산 사정으로 누각 건립이 늦어지자 4. 2일 왕산선생의 탄신일에 장세용 구미시장을 헌관으로 모시고 위패봉안식을 가졌다. 또한 기념사업회는 위패봉안을 기점으로 선생의 우국충정 정신이 널리 알려져 모든 시민들이 관람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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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2회 왕산백일장 시상식 개최구미시 (사)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 김교홍)에서는 지난 9. 15(토) 14:00 본관 2층 시청각실에서 장원을 포함한 입상자 및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회 왕산백일장 시상식을 개최했다. 왕산 백일장은 한말 항일의병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게 널리 전승하고자 전국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개최하였으며, 주제는 ‘왕산허위선생의 고귀한 희생과 왕산허위선생의 호국정신’이다. 지난 한달 동안 우편과 이메일로 200여명이 응모한 작품 중에 호국정신의 이해와 작품성, 표현의 논리성, 간결성, 창의성을 기준으로 심사하여 2개 부문(운문, 산문)에서 장원(보훈청장상 4명), 차상(시장상 4명, 교육장상 4명), 차하(시장상 6명, 교육장상 6명), 장려(관장상 20명)로 총 44명이 입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한편, 구미시는 왕산 허위 선생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임은동에 선생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생가터는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여 2009년부터 위탁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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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 수상자 선정구미시(시장 남유진)는 12월 16일 지역 기관장 및 사회단체, 학계, 언론계 등 각계 인사 20명으로 구성된 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2014년「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수상자로 김교홍(사)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근호(대한노인회 구미시지회 원평1동분회장), 한성욱(경운대학교 교수) 이상 3명을 선정 발표하였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1월 3일까지 22일간 후보자를 접수받은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묵묵히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한 5명의 후보자가 추천·접수되었으며, 본상은 구미시청 홈페이지에 일정기간 대상자를 공개하여 시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고, 각계 각층의 인사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하는 등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시상하는 구미시 최고의 상이다.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사)왕산기념사업회 김교홍(金敎洪, 80세) 이사장은 협업농장과 농촌개발협회를 설립하여 선진농장, 선진농업인을 육성하여 농업·농촌의 발전과 소득증대에 기여를 하였고 구미예절원을 사비로 운영하면서 예절과 생활규범 지키기에 앞장서는 등 생활규범과 예절의 수호자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향토문화의 산실인 구미문화원 초대∼5대 구미문화원장을 역임하며 지역 문화의 발굴·보존·계승에 남다른 애정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일제에 항거하여 싸우다 순국한 지역의 우국지사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선생의 고귀한 희생과 업적을 기리는데 솔선수범하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사장직(관장 겸임)을 보수 없이 수행하며 봉사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대한노인회 구미시지회 김근호(金根鎬, 80세) 원평1동분회장은 구미라이온스를 창립(초대 회장)하여 봉사활동 전개하였고, 직장공장새마을운동 구미시협의회 초대 및 2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구미지역 봉사 단체의 활동방향을 정립하였으며, 성균관유도회 구미지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의 학생, 시민 등을 대상으로 충효사상과 인성교육에도 힘써왔다. 현재는 대한노인회 구미시지회 원평1동분회장직을 수행하며 노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경운대학교 보건대학 보건바이오학부 한성욱(韓盛旭, 57세) 교수는 성찰과 배려를 통한 학생 생활 지도 및 연구활동으로 지역 교육 발전과 인재육성에 기여하였고 환경분야 전문가로 구미시설계 자문위원, 구미시 환경위원회 위원 등 각종 위원회 활동 및 환경보전을 위한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구미시 환경문제 해결과 구미시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한편,「자랑스런 구미사람 대상」은 1996년 구미시민상과 구미문화상, 선산군민상을 통합한 후 올해 19년째로 지난해까지 총 179명의 모범시민을 선정하여 시상하였으며, 2014년도 시상식은 12월 31일에 있을 예정이다. 수상자에게는 연말 시민 안녕·행복 기원 행사 등 각종행사에서 시민을 대표하여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