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암의 유래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조선시대에도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5년 우상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에 작성된 우상학의 약사암중수기에는 법당 내의 석조여래좌상은 지리산에 있었던 석불 3구 가운데 하나가 약사암에 봉안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사찰 내에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 등이 있으며, 천혜의 거대한 바위 앞에는 약사암이 있으며, 앞에는 시원스런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약사암범종제막식 장면
약사암 앞에는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 구름다리 건너서 있는 범종루가 한 폭의 그림 같이 자리잡고 있다.
금오산도선굴
금오산 북쪽 계곡 중턱에 자리한 도선굴은 금오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자연전망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라말 도선대사가 수도한 곳이라해서 도선굴이라고 불리우며, 임진왜란 때에는 양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보물제490호
절벽의 바위면을 깎아 만든 높이 5.5m의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보살상이 암벽의 모서리 부분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부피감도 있지만, 가는 눈과 작은 입에서 신라시대의 보살상과는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어깨나 팔의 부드러운 굴곡은 얼굴에 어울리는 형태미를 묘사하고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진제공(정의석 작가)